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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ene Therapy/이레네자료실

세상과 通한 이야기 ;우리에게 가족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by familycenter 2017. 11. 5.

 

 

 

우리에게 가족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가족!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병을 같이 앓게 하고, 같은 치약을 쓰게 하며, 디저트를 더 먹겠다고 다투게 하고, 서로의 샴푸를 몰래 훔쳐 쓰게 하며, 돈도 빌려 주고, 아픔을 주기도 하면서, 또 그 아픔을 달래주기도 하는, 울고 웃으며 사랑하게 만드는 작고 신비로운 끈이다. 각자의 방문을 잠그고 살다가도, 어려운 고통에선 모두가 힘을 합쳐 서로를 지켜주는, 그런 특별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보이지 않는 끈, 그것이 가족이다.”

 

2007년 소개된 에마 봄베크의 시(詩)에 나오는 구절이다. 시어(詩語)에 투영된 가족의 모습은 일상의 소소한 풍경이 손에 잡힐 듯 담담하게 묻어나오면서도, 관계성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인류가 고안해 낸 제도로서의 진정성을 느끼게 해주는 듯하다.

누군가 나를 향해 가족이 무엇이냐 물어온다면? “오줌 누는 소리를 들려주어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들, 그들을 위해 쓰는 돈이 전혀 아깝지 않은 사람들, 고통을 나눌 때보다 기쁨을 나눌 때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사람들, 작은 일에 서운함을 느끼고 큰일에 배신감을 느끼다가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모진 감정들이 사라지는 사람들, 싸우면서도 밉지 않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내는 삶”이 가족이라 답할 것 같다.

실제로 가족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공간이자 친숙한 경험 세계로 다가오기에, 우리 대부분은 가족을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제도라 생각하곤 한다. 덕분에 가족을 화두로 삼아 이야기를 나눌 때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보다는 무엇을 말해선 안 되는지에 대해 더욱 민감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어차피 가족에 대한 인상은 10인(人) 10색(色)이요, 최근 들어선 가족 연구자들조차도 가족을 한 가지 모습으로 정의하길 포기한 마당이니, 가족에 관한 정답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을 수 있겠다 생각하는 것이 현명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다짐을 했음에도 ‘한국인들에게 가족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란 호기심이 자꾸만 고개를 든다. 우리네 가족의 자화상을 돌아볼 수 있는 에피소드를 통해 이 호기심에 답하기 위한 단서를 찾아볼까 한다.

 

첫 번째 사례다. 수년 전 한국의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세계적 석학 한 분을 초청하여 대규모 강연회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당시 그를 초청하기 위해서는 매우 많은 비용이 소요되었기에 몇몇 관련학회가 힘을 모아 공동으로 주최하기로 결정하였다. 한데 초청 강연회 일정 한 달여를 앞두고 석학 측으로부터 ‘유감스럽지만 이번 한국 방문은 불가(不可)하게 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이유를 물어보니 부인이 갑작스럽게 무릎 관절 수술을 받게 되어 부인 곁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란 답이 돌아왔다.

당시 주최 측에선 그런 사소한(?) 이유로 오랜 시간 준비해온 중요한 행사를 불발로 끝낸 석학의 태도를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정서가 지배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과연 입장을 바꾸어 한국의 저명한 학자가 동일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부와 명예를 동반하는 공식 강연 일정을 ‘기꺼이’ 포기하고 부인 곁을 지키겠다는 선택을 했을까. 진정 의문이다.

 

두 번째 사례다. 미국 유학 시절 친구의 초대를 받아 MBA 졸업식에 참석한 자리에서 꽤나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했다. 한 학생이 졸업장을 수여받을 차례가 되자 학장이 단상에 있던 한 교수에게 잠시 자리를 내주었다. 그 교수가 앞으로 걸어 나오자 졸업식장에 있던 학생들 모두 모자를 벗어던지며 열렬히 환호하는 것이 아닌가. 당시 학장을 대신해서 학위를 수여한 교수는 바로 학위를 받게 될 주인공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아들을 향한 대견함과 자랑스러움이 숨김없이 묻어났고 아들 또한 기쁨의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과연 우리네 대학의 학위 수여식장이었다면, 미국에서처럼 부자(父子) 관계를 그토록 공공연하게 표출할 수 있었을까. 역시 의문이다.

한국사회에선 가족주의가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에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한데 가족주의 또한 실생활 속에서 다양한 얼굴을 보이고 있음은 물론이다. 서구식 부부중심 가족의 얼굴과 180도 다른 한국식 가족 공리주의의 실례를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몇 해 전 수도권 사립대학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교수 연봉제를 도입하면서 해당 대학에서는 교수를 A, B, C 세 등급으로 나누어 상위 10%의 A등급 교수에게는 연봉에 더해 10%의 인센티브를 주기로 하고 하위 10%의 C등급 교수에게는 연봉에서 연봉의 10%를 감하는 벌칙을 부과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결정 사항을 교수와 그(녀)의 배우자들에게도 함께 전달했다. 학교 측의 방침을 전달받은 배우자들 대부분은 남편(아내)을 향해 ‘학교에서 밤늦게까지 연구에 전념하여 필히 A등급을 받아올 것’을 주문했다는 전언이다.

최근 가족의 흔들림이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우리에게 가족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닌 존재인지, 깊어가는 가을에 마음의 화두로 삼아봄은 어떨는지. 물론 다양한 정답을 인정해주는 유연함과 포용력에 기대어 말이다.

 

※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이화여대 사회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미국 에모리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가족과 생애주기 그리고 세대 공존을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일상과 예술 속의 커뮤니케이션>(공저) <다양한 가족제도와 미완의 양성평등>(공저) <현대 한국인의 세대 경험과 문화>(공저) <60세 정년연장 의무화법에 대한 근로자 인식과 정책 니즈> <한국 가족연구 50년의 평가와 전망> 등 다수의 논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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